박근혜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되자 진영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이 출신지를 전북 고창으로 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서울 용산에서 3선을 한 그는 당연히 서울사람이다. 그런데도 애써 부친의 고향인 전북 고창을 출신지로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조각에서 호남 출신이 적다는 것을 다분히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출신지를 전북 전주로 발표해 논란을 빚었던 이명박 정부 조각 때보다도 악화된 호남 안배 사실을 희석시킬 필요가 있었을 게다. 능력과 전문성을 고려할 뿐, 지역이나 학연을 고려해서 기계적으로 배분한다는 인식이 없을 것이라는 박근혜 당선인 쪽이 굳이 호남 출신의 숫자를 늘려 ‘보이려’ 한 것은 까닭이 있다.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실시해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정권을 만들겠다”는 약속이 걸렸기 때문이다. “내 사전에 약속을 깨는 일은 없다”는 박 당선인의 첫 인사에서부터 깨어진 약속이 부담스러웠을 터이다. 그래도 여성이 2명에 그치고, 특정 학교와 지역에 편중된 내각 인선 결과는 그의 ‘대탕평’ 약속을 무력화시켰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측에서는 뒤늦게 보도자료까지 내서 나이를 69세가 아닌 68세로 교정했다. 1944년생이지만 생일이 도래하지 않았기에 68세라는 거다. 생일까지 따져가며 나이를 줄이려는 것, 내각과 청와대 수석들이 50대 중반 이상으로 채워진 ‘고령 인사’인 것에 대한 감안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이 많은 이들의 경륜은 충분히 중시되어야 할 것이나, 일관되게 구시대의 올드보이들을 중용한 것을 물타기할 필요가 있었을 법하다. 그렇게 해도 박근혜 정부의 첫 내각과 청와대 진용에서 80년대 대학 학번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한 명뿐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약속한 세대별 탕평 인사도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결국 장관과 청와대 수석 대부분이 유신시대에 대학을 다닌 인사들이기에 내력을 봤다. 유신의 폭압이 절정에 달하던 시절, 민주화를 위한 행동은커녕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보였던 이력을 가진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유신시대를 ‘안전하게’ 지나온 많은 이들의 부채의식을 일깨웠던, 엊그제 정계은퇴를 선언한 유시민의 그 항소이유서(1985년)다. 항소이유서에는 평범한 서울대 신입생이던 그가 제적-강제징집-복교-제적-구속의 과정을 거치며 ‘문제학생’으로 변화되는 배경이 적혀 있다. “모든 이들로부터 축복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때에, 서울대 사회계열 신입생이던 본 피고인은 ‘유신체제’라는 말에 피와 감옥의 냄새가 섞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신만이 살길이다’라고 하신 사회선생님의 말씀이 거짓말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어진다. “(1978년) 5월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처음 맛보는 최루가스와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가던 여리디여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회관 후미진 구석에 숨어 겁에 질린 가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들기 시작했습니다.” 유시민은 드디어 그해 겨울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돼 나오는 것을 보고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늘 그려오던 법관 지망의 꿈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고 자술한다.


대부분이 유시민과 동세대인 박근혜 정부의 장관과 청와대 수석 내정자들의 이력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유신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흔적조차 없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찬조연설에 나선 윤여준은 “민주화에 있어서는 민주화 세력의 반대 진영에 속해 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민주화의 혜택은 누구 못지않게 누린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빚진 사람인 셈이다. 그런 미안함과 부채의식이 마음 한켠에 늘 있어 왔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각료와 청와대 수석들은 그런 부채의식조차 보이지 않는다.


박 당선인이 인선한 장관들과 청와대 수석들은 대개 박정희 시대에 고시를 패스해 관료와 판검사의 길로 접어들었거나, ‘박정희 사람’의 아들들이다. 그들에게선 박정희 시대가 갖는 어두운 부분은 감춰지고, 오로지 빛나는 성취의 시대였다는 것으로만 투영된다. 그러했기에 휴대폰 고리에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사진을 달고 다니고, 다시 ‘새마을운동’을 주창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DB)


대통령 당선인 박근혜의 이 같은 인사는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꾀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 박 당선인이 정치를 하면서 이유로 내건 것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이었다. 박 당선인의 인사는 박정희 시대의 빛만을 강조하고, 그림자를 철저하게 지우는 쪽에 맞춰져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당위로 내세운 ‘시대교체’를 기대했다면 접어야 할 듯싶다. 내각과 청와대 인선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결국에는 ‘포스트 박정희 정부’가 되려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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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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