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정치·국제 에디터


민주통합당의 집단적 기억력은 딱 2주짜리다. 혹독한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적확한 지적이다. 결국에는 정당에 대한 평가인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2주 정도만 지나고 나면 패배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계파적 이해가 살아나 지배하는 것이 민주당의 습속이 된 때문이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그랬고, 이번 대선 패배 뒤에도 어김없이 그렇다.


실제 민주당이 대선 패배 이후 보여주고 있는 궤적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저버린 역사의 죄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무능과 태만, 지리멸렬의 모습 그대로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에서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반성과 책임의 조치는 아직껏 어디에서도 행해지지 않고 있다. 패배한 정당이 너무도 태연하게 안정과 화합을 외치며 낡은 체제의 연명에만 골몰하고 있는 꼴이다. 몇 차례 진행된 대선 패배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본질의 언저리도 건드리지 못한 채 당권 등을 둘러싼 계파 싸움에 활용됐을 뿐이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3주 만에야 문희상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고 비상체제를 가동시켰다. 비상대책위원장 선임을 두고 벌어졌던 볼썽사나운 계파 다툼의 난맥상을 환기하자면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수습과 쇄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부터 든다.


하지만 그 수습과 쇄신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대선에서 확인된 새로운 야당에 대한 요구를 수용해내지 못할 경우, 민주당은 존폐의 기로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과거에 참고할 교과서도 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 등으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에서 등장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혁신적인 인물을 영입해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 의제를 끌어안고, 당명과 당색마저도 바꾸며 쇄신의 노력을 가해 도저히 이길 수 없다던 총선에서 승리했다.


여기서 민주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방치하고 있는 대선 패배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평가 작업이다. 지나치게 파헤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요하고 치열하게 패인을 분석하고 정리해야 한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그 당연한 패배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성찰을 회피한 채 봉합하고 넘어갔기에 이어진 대선에서 패배는 어쩌면 예비된 것이었다. 민주당의 고질적인 민심 난독증은 바로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제대로 된 평가와 진단을 하지 못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일 터이다.


대선 패배 원인에 대한 분석과 진단은 더욱이 책임의 면피, 주류 세력에 대한 변호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엄정하고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적당한 수준의 구색맞추기 평가가 되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그래서 어떤 쪽으로의 변화와 쇄신을 해야 하는지를 찾을 길이 없어진다. 단순한 패배의 복습이 될 뿐이다.


다음으로 그 분석과 평가를 바탕으로 대선 패배 책임의 소재를 밝혀야 한다. 1469만표의 지지만 얘기했을 뿐, 그들의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을 좌절시킨 책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역사 앞에 큰 죄를 지었다”는 뻔한 수사만 있었을 뿐, 속죄를 실행한 인사나 세력은 없다. 선거에서 패배를 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책임정치의 기본이다. 한데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문재인 전 후보는 ‘트위터 정치’를 통해 끊임없이 존재를 과시하며 여의도 정치로의 조기 복귀를 고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선거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친노 주류 세력은 주도권을 놓지 않고 기득의 사수에 총력이다.


무조건 싸우지 말고 단합하자는 미명을 앞세워 또다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런 책임조치도 없이 넘어간다면 ‘낡은 민주당’의 연명은 될지언정, 새로운 야당으로의 진화는 불가능해진다. 그때 그 사람들과 세력이 다시 민주당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그 어떤 변화와 쇄신을 말한들 진정성을 담보받기 어렵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민주당의 주도 세력과 리더십의 획기적 변화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두 달 후쯤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낡은 체제와 리더십이 경쟁을 통해 전면적으로 바뀔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당대회에서 리더십과 당의 혁신방향을 놓고 경쟁과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틀을 구축해야 한다.


자기 부정에 가까운 당 혁신, 책임과 고통을 수반하는 인적쇄신 없이 기존의 낡은 체제와 문화에 의존해서는 민주당의 미래는 있을 수 없다. 적당한 수준의 면피성 개혁과 주류 세력 내에서 대표선수만 일부 교체하는 인적쇄신에 그친다면 대선에서 이미 확인된 민주당에 대한 국민심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민주당의 재구성이 대선 패배의 책임 있는 사람과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고 낡은 체제의 외양만 화장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지난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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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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