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정치·국제 에디터


 

민주통합당이 안철수 대선 후보 사퇴에 대해 “큰 빚을 졌다”고 감사해 했지만 애당초 질 싸움의 구도를 깨뜨린 것부터가 안철수였다. 안철수현상이 등장하기 전까지 선거의 구도는 ‘박근혜와 그 나머지’로 짜여졌다. 확연해진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도 불구, 정권에 대한 평가가 여당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구현되지 않고 되레 ‘박근혜 대세론’으로 귀착되는 전도된 구조를 무너뜨린 것이 안철수현상이다. 정권심판의 여론이 비등하던 지난 19대 총선에서 야당이 무능과 오만으로 패배, 쇠잔해지는 정권교체의 열망을 되살려낸 것도 안철수현상이다. 안철수는 기성 정치에 대해 도저한 불신을 가진 부동층과 젊은 세대가 정치적 각성을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는 정권교체에 대한 지지의 확대로 나타났다. 그것이 난공불락일 것 같던 박근혜 대세론을 일거에 흔들고, 불임의 정치에 봉착했던 민주당을 되살려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야권이 ‘질 수밖에 없는’ 대선으로의 길로 들어가는 것을 막은 것도 안철수였다. 파탄 지경에 처한 야권 후보 단일화는 민주당과 문재인 대선 후보가 아니라 안철수의 결단에 의해 살아났다. 정당의 조직을 앞세운 소위 ‘맏형’의 압박에 의한 것이든, 선의의 결단이든, 권력 의지가 약한 ‘정치 초짜’의 좌절이든, 안철수의 후보 사퇴가 있었기에 단일화는 이뤄졌다. 그간 민주당의 역할은 독하게 말하면, 당력과 친노세력을 총동원해서 후보 양보를 압박하고 사퇴를 강제화한 것뿐이다. 민주당이 단일화 과정에서 쇄신과 변화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은 행동은 없었다. 뒤늦게 마지못해 행한 지도부 총사퇴 선언이라는 구색의 조치를 빼 놓고는 혁신을 위한 의미 있는 조치를 보여준 적이 없다. 무조건 단일화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공학에 매몰돼 단일화 승리 방정식에 매달렸다. 그래서 소위 아름다운 단일화 과정은 형해화되고, 벼랑 끝에 몰린 ‘안철수의 눈물’에 의해 민주당은 단일후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여하튼 좌초 지경의 단일화를 구해낸 안철수의 사퇴에 대해 “고맙고 미안하다”는 등속의 연민의 찬사는 민주당에서 무성했다. 하지만 단일화 과정을 굴절시키고, 해서 정권교체의 열망을 균열시킨 데 대한 성찰과 반성의 언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경향신문DB)


그리고 또다시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에 목매고 있다. 온갖 제안을 쏟아내면서 안철수의 선거 지원을 통사정하고 압박하고 있다. 안철수 캠프 사람들을 죄다 선거대책위에 포진시키고, 사퇴하기 전에 대선 후보로서 발표한 안철수의 정책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심지어 원하면 당을 통째로 맡기겠다는 얘기까지 한다. 앞서 어떤 식으로든 단일화만 성사되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더니, 이제는 안철수의 지원만 있으면 무조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안철수의 선거 지원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내느냐가 절대의 선거전략이 된 모습이다. 오죽했으면 소속 중진 의원이 “50년 전통의 127명의 국회의원을 지닌 민주당이 단 하루도 세비를 받아본 적 없는 안철수에게 대선 승리의 키를 구걸하고 있는 꼴”이라고 했을까 싶다.


민주당을 지금 이대로 둔 채 안철수의 선거 지원만 이끌어내면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고, 시대교체를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기 십상이다. 공고한 박근혜 대세론을 허문 안철수현상, 거대 정당의 견제 속에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지지세가 사퇴하기 전까지 견지된 것은 그 안에 담긴 대중의 지지가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이다. 고단하고 불안한 현실의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그만큼 광범위하다는 것이고, 거기서 배태된 낡은 체제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징표다. 그건 지금까지 어느 정당도, 어느 정당의 후보도 온전히 포착하고 수용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안철수의 사퇴로 인해 길을 잃은 그 지지와 열망을 끌어안는 것은 단순한 안철수의 선거 지원으로는 담보되지 않는다. 안철수현상을 불러낸 대중의 요구, 정치의 변화와 정당의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일화에 묻혀 있던 정치쇄신의 문제, 또 다른 기득권인 민주당의 혁신에 대한 실행과 비전의 제시가 먼저라는 것이다. 이른바 친노의 패권주의 하나 혁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안철수의 선거 지원을 끌어낸들 속절없는 일이기 쉽다. 특히 안철수현상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정치적 각성을 이룬 젊은 세대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없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선 후보는 “내 얘기를 들어줄 후보가 사라졌다”고 허탈해하는 무당파와 젊은층이 투표장에 가는 것을 포기하면 대만족일 터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기성의 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 탓에 아예 거부와 포기를 택했던 그들이 안철수를 통해 발견한 변화에의 희망, 참여의 기대를 살려내야 가능하다. 그건 전적으로 후보를 사퇴한 안철수가 아닌, 민주당과 단일후보 문재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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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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