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선거일 현재 만 40세, 국회의원 후보는 25세에 달해야 한다. 해방 후 한번도 바뀌지 않은 이 규정만큼 우리 정치에서의 ‘나이’의 자리를 보여주는 것도 없다. 14세부터 환경운동을 시작, 만 18세에 국회의원이 된 독일 녹색당의 안나 뤼에만은 여전히 우리에게는 먼 표상이다.

‘나이’의 정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이제는 보통명사가 돼버린 ‘40대 기수론’이다. 그간 숱한 40대 기수론이 명멸해갔지만, 진정 성취와 업적으로 남은 것은 사실상 한국정치사에서의 첫 40대 기수론이었던 36년 전의 그 때뿐이다.

1969년 11월8일 당시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43)가 대통령 후보 지명전 출마를 선언했지만, 그것은 여전히 “구상유취(口尙乳臭)이고 정치적 미성년자의 사고”(유진산)로 치부했다. 30대의 외무장관, 참모총장, 중앙정보부장, 일간지 사장·편집국장이 즐비한 시대였으나 정치권에서 40대는 ‘젓비린내 나는 어린 것’에 불과했다. 김대중 의원은 “가장 보수적이라는 천주교조차 40대의 김수환씨가 불과 2년 만에 많은 연상배를 제치고 신부에서 주교, 대주교, 그리고 세계 최연소의 추기경 전하에까지 대진출했다”는 사례로 40대 기수론을 정당화해야 했다. 
 

출처 : 경향DB


-공허한 40대기수론 실망-

구상유취의 40대 기수론은 그러나 금권과 계파 정치에 함몰해 있던 무기력한 야당을 개벽시키고, 장기집권의 길로 접어든 박정희 독재정권의 철옹성에 균열을 가하는 기폭이 됐다. 국민과 함께 했고, 시대의 열망을 반영했기에 가능했다.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첫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들, 향토예비군 폐지·대중경제 구현을 위한 노사 공동위원회 설치·미일중소 4개국에 의한 전쟁억제 요구·비정치적 남북교류 등의 정책들이 증거하듯 단순한 나이의 세대교체에만 머무르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그 36년 후 열린우리당에서 등장한 40대 기수론은 동세대 의원으로부터도 ‘사이다인 줄 알았는데 김빠진 설탕물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의장은커녕 최고위원 말석에 들지를 긍긍하는 지경에 처해 있다. 당연한 업보다. 그것은 열린우리당이 무능·태만·혼란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없었다. 당내 선거 때가 되어서야 나타나는 40대 기수론은 결국 비판을 무기 삼아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려는 것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의 40대 기수론자들이 내세우는 구호들은 헛것이거나 철 지난 것들이다. 민주당과의 통합, 당의 단결, 당내 계파 해체 같은 이슈들은 개혁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40대적이지도 않다. 최소한 신선하지도 않다.

그 파탄의 표징이 소위 40대 기수 단일화론이다. 정동영·김근태라는 거대 후보들의 틈새에서 어떻게 살아날 것인가의 정치공학에 빠져, 최고위원 말석에라도 턱걸이하려는 단일화 논의는 결국 40대 기수론이라는 게 권력지분을 위한 구호였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지금 열린우리당의 40대 기수론자들은 36년전 원조 40대 기수론의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있고, 지역감정이라는 벽에 숱하게 깨지면서도 줄기차게 맞서 싸웠던 ‘40대의 노무현’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중추가 된 40대의 문제의식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비판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성역에 갇혀 있고, 비전은 그들이 극복하겠다는 거대 후보들만큼도 못하고, 정책은 새롭지도 차별적이지도 않다.

-‘새시대맏형’모습 보여줘야-

그들이 ‘새시대의 맏형’이 되고자한다면 설령 이번 전당대회에 참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왜 40대가 기수가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 당은 어떻게 달라지고 어디로 갈 것이며, 우리 정치는 어떻게 혁명할 것이고, 국가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비전을, 희망을 전파하라. 설령 지금 기수(旗手)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 중 한 사람이 스스로 다짐했던) ‘시대를 선도하는 나팔수’ 역할이라도 제대로 해보라.

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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