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전 맨 앞쪽에 놓인 이명박 서울시장의 ‘폼나는’ 사진은 문득 한 삽화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해 청계천 복원 공식 행사가 있기 전에 사전 설명과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이시장은 청계광장에서부터 장통교 어간까지 천변을 참석 언론인들과 함께 걸으며 직접 설명을 하는 의욕을 보였다. 중간쯤 다다랐을 때, 누군가가 “저게 뭐지”라며 산책로와 물이 흐르는 곳 사이에 조성된 콘크리트 계단의 틈새를 가리켰다. 이시장이 그쪽으로 갔다. 그 ‘뭐’는 게나 가재였던 것 같다. 이시장은 이 생물의 출현을 ‘살아 있는 하천’임을 보여주는 한 징표로 읽어주기를 바라는 듯 싶었다. 솔직히 한강물을 인공으로 퍼올려 시험 통수(通水) 중이던 청계천에 그 생물이 출현하는 것이 실제 가능한지에 대해 그날도,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삽화는 이시장이 복원된 청계천에서 부족한 2%, 이름만 바꾼 개발주의로써 반(反)문화적이고 반(反)생태적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매우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 판단은 최근 청계천 상류에서도 물고기를 볼 수 있게, 서식·산란 시설을 인공적으로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발표로 더욱 굳어졌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 대운하 설명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l 출처 : 경향DB


새삼스러운 등식이지만 차기 대통령감으로서 대중의 선호가 가장 높은 이시장의 ‘지금’은 청계천이 있어 가능했다. 교통과 노점상 등의 난제를 무리없게 풀어 결국은 복원시켜 놓은 청계천이라는 실물(實物)은 분명 ‘이명박표’ 상품이다. 이 상품은 벌여놓은 것에 비해 구체적 성취가 부족한 현정권과 반사(反射)되면서 대중의 구매력을 한층 자극했고, 차기 대권경쟁에 나선 이시장에게 대박을 안겨줬다. 실로 청계천의 후광은 강렬했고, 그래서 이시장의 과거 허물들은 사면되는 듯했다.

하지만 근래 터진 이시장을 둘러싼 갖은 논란과 시비들은 청계천이 그의 모든 것을 사면해주지 않는다는, 그래서도 안된다는 당연한 진실을 확인시킨다.

소위 ‘황제테니스’는 추가적 불법 사실 여부는 검찰수사 등에서 나오겠지만, 최소한 부적절한 방식과 대금 지급의 사실은 드러났다. ‘21세기의 디자인’전의 ‘이명박 사진’은 히딩크 감독과 찍은 반바지와 샌들 차림의 이시장 아들의 사진이나, 광주 5·18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웃음을 터뜨린 이시장의 사진과 겹쳐진다.

못지않게 심각한 것들은 요즘 부쩍 파편을 튀기는 이시장의 언어들이다.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 퇴폐적 공연을 하는 팀의 블랙리스트를 만들라’는 등의 구설(口舌)을 일으켰던 이시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말의 정치’ 마당에 뛰어들기로 작정한 듯싶다. 아니고서야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노는 것, 춤추는 것을 좋아하니 서울시장이 되면 공무원들은 매일 놀 수 있어 좋아할 것”이라거나 “이영애나 배용준이 인기가 많아도 나오면 유권자들이 표를 찍겠느냐”는 식의 말로 정치를 하려 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시장은 이런 말로 정치적 데마고그를 꾀했는지 모른다. 허나 아무리 잘 봐줘도-그의 친형(이상득 의원)의 지적대로-“여론조사가 잘 나오니까 긴장이 풀린 것 아니냐”는 오만의 징표였을 뿐이다. 미국 방문 중에 쏟아놓은 과도한 친미(親美) 발언들과 현정부를 겨냥한 색깔론,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해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들은 간단히 실언의 수준으로 치부키 힘들게 한다. 이시장의 이념과 인식의 근저가 여전히 냉전의 독재 개발시대에 닿아 있다는 기호(記號)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시장이 돌연 정치적 논란의 주인공이 된 것을 두고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된 것”이라는 진단이 한나라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맞다. 청계천이라는 대박의 상표는 그간 이시장에 대한 객관적 검증의 시선을 방해하는 장막(帳幕)으로 작동한 측면이 있다. 작금의 ‘이명박표’ 스캔들들은 그 장막을 걷어내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단순히 대세론에 취해 나온 헛발질인지, 아니면 지도자로서 자질의 부족을 반영하는 건지 똑똑히 검증해봐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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