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만큼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 개표 방송이 싱거운 선거도 없을 터이다. 16개 광역단체장 선거 중 대전과 제주의 결과만을 지켜보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전과 제주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 나오든, 전체 선거의 성격을 바꾸지는 못한다.

5·31 지방선거는 분명 한국 선거사에 한 장을 기록할 것이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선거 가릴 것 없이 한나라당이 70% 이상 석권하리란 예상대로 귀결된다면, 전국적 선거에서 한 정당이 가장 배타적 승리를 거둔 사례가 된다. 16개 광역단체장과 230개 기초단체장의 70% 이상이라면, 국회의원 선거로 치면 299석 중에서 210석 이상을 차지하는 꼴이다. 이 정도면 막판에 열린우리당에 의해 ‘앵벌이성’ 선거 전략의 구호로 등장했지만, 분명 ‘싹쓸이’다. 한국전쟁이나 4·19혁명과 5·16 쿠데타 같은 배경 속에서 치른 선거들을 빼고는 전국적으로 치른 직접 선거에서 한 정당이 이만큼 싹쓸이한 적은 없다.

-민주주의 위기 징후-

권위주의 정권의 갖은 탄압과 부정 속에서 실시된 선거에서는 물론이고, 제도적 민주가 보장된 1980년대 후반 이후 전국적 선거에서 한 정당이 싹쓸이식 승전을 거둔 예가 없다. 국민들은 한 정당의 독점적 권력을 허용하지 않았다. 견제와 균형의 투표의식이다. 특정 정치세력에 과도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남용과 부패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특히나 민주에 반한 권위주의를 낳을 수 있다는 이 고도의 정치의식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단시일에 성숙·완성시켜온 근원(根源)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오발탄을 쏴 몰락의 지경에 처했던 한나라당이 126석의 제1야당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이 견제와 균형의 심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며칠 전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의 말을 빌리면 ‘한나라당의 탄핵은 잘못됐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한 정치세력이 의석을 싹쓸이 해서는 안된다는 높은 정치의식’이 작동한 측면이 있다. 실제 이른바 ‘천막당사’로 이전한 날 발표된 한나라당의 대국민호소문이 기댄 것도 “성숙한 민주의식으로 견제와 균형의 정치를 만들어 주시라”는 거였다. 모든 의제를 일거에 무력화시킨 탄핵 역풍 속에서도 전체 야당 의석이 열린우리당에 불과 5석 적게 나온 균형은, 한번도 한 정당에 절대 권력을 부여하지 않아온 견제 투표의 경험측이 재현된 결과다.
 

30일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선거에 사용될 투표용지 견본을 공개했다. l 출처 : 경향DB


열린우리당이 엊그제 비상회의라는 것을 소집해 마련한 대국민호소문 역시 골간은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마비될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으니 싹쓸이를 막아주십시오”이다. ‘백약이 무효’인, 속수무책의 선거 흐름 속에서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이밖에 달리 기댈 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호소도 ‘무효인 백약’의 나열을 추가하고 있을 뿐이다. 한 정당이 지방정부와 그 정부를 견제·감시할 지방의회를 독점하면 견제의 장치가 무너지고, 필연적으로 권력의 남용과 부패가 초래될 것이라는 데는 충분히 합리적 논거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이태 전 총선에서는 차떼기와 탄핵의 한나라당에도 작동됐던 견제와 균형의 투표의식이 이번에는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지방정치, 지방정부에서는 양당의 구도가 무너지고 1당의 지배가 등장한다.

-정치판 새로 짜야한다-

이것은 선거의 승패와 그 정도(程度)를 떠나 심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 선거 때마다 절묘히 발현되어온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흔들리는 징후로 볼 수 있어서다. 물론 이것을 초래한 것은 열린우리당에 대한 도저한 민심의 이반이다. 열린우리당이 예상대로 참배한다면, 이는 단순히 지방선거 패배에 국한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을 카운터 파트너로 개혁세력을 자처했던 정당의 완벽한 좌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라는 양당구도가 붕괴됨을 뜻한다. 지방선거 뒤 정계개편은 열린우리당의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정당판을 짜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양권모 논설위원〉

Posted by 양권모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