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여적 2006. 1. 5. 16:03

인류 최초의 동굴벽화에 그려진 것을 해독하면 “요즘 얘들은 싸가지가 없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실로 싸가지는 사람을 판단하는 최고(最古)의 잣대인 셈이다.


‘싸가지’는 본래 전라도 방언이다. ‘싹’에 어리다는 의미의 ‘아지’(송아지의 아지)가 붙어 생긴 말이다. 표준어로는 ‘싹수’쯤 된다. 하지만 ‘싹수가 없다’와 ‘싸가지가 없다’의 뉘앙스는 차가 완연하다. 싹수가 장래성에, 싸가지는 현재의 행태·품성에 보다 무게가 두어지기 때문이다. ‘싹수 없다’고 하면 그러려니 넘어가겠지만, ‘싸가지 없다’고 하면 즉각 얼굴을 붉히게 되는 소이다.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싸가지가 없어서’라고 하니, 거부 정서의 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일찍이 같은 당의 386의원이 “저렇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유의원을 절묘하게(?) 정의한 바 있다. 유의원 스스로도 어느 인터뷰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싸가지 없이 많이 한 것은 인정을 해요”라고 한 적이 있다. 말본새가 싸가지가 없으면 내용 이전에 열부터 받게 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니,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반감도 이해할 듯도 싶다. 때론 본질적인 것보다 정서적인 것이 더 강렬한 법이다.

한데 문제는 싸가지의 유무(有無)를 가를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주관적, 상대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해서 열성적 지지자들에게는 유의원만큼 ‘싸가지 있는’ 정치인도 드문 것이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유의원 임명을 강행한 것은 ‘싸가지 없다’는 평을 수긍하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싹수 있다’고 봤다는 얘기다. 4년전 대통령후보 경선 때, 노무현 후보도 민주당 의원들 다수로부터 ‘싸가지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결국 유의원의 싸가지를 놓고,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시선이 완전히 상반되는 게 작금의 분열을 초래한 셈이다. 즉 ‘싸가지’의 코드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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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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