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둥이(nigger)

여적 2015. 6. 24. 21:00

가장 미국적이고 미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nigger(깜둥이)’라는 표현이 300번 가까이 등장한다. 가령 미시시피 강에서 배 사고가 났을 때 “다친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허클베리 핀은 “아무도 없다. 깜둥이(nigger) 한 명이 죽었다”고 답한다.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당시 남부의 흑인 노예에 대한 태도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마크 트웨인은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에 시달렸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한동안 도서관의 금서 목록에 오르내렸다.

비틀스 존 레넌의 작품 중에서 가장 커다란 논란을 일으킨 곡 중 하나가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여자는 이 세상의 깜둥이)’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그린 노래임에도 제목과 가사에 등장하는 ‘nigger’라는 단어 때문에 여성계와 흑인사회의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흑인 여인의 초상화 (출처 : 경향DB)


흑인을 뜻하는 니그로(negro)와 니거(nigger)의 어원을 따지면 ‘검다’는 뜻의 라틴어 니게르(niger)로 모여진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흑인 노예를 ‘니그로’라고 칭했고, 이의 경멸적 표현이 ‘니거’이다. 1950~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을 거치면서 노예제의 부정적 유산이 깃든 니그로는 인종차별의 금칙어가 되었다. 흑인을 지칭하는 용어는 ‘블랙(black)’이나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 American)’으로 대체됐다. 미국 사회에서 니그로, 니거 등 소위 ‘N단어’를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는 것은 인종주의자로 낙인찍혀 파멸을 부를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지적하면서 ‘깜둥이’라는 금기어를 사용해 파장이 일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인종주의로부터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그 인종주의라는 게 공개적 장소에서 깜둥이라 부를 정도로 무례한 수준이 아니라 해도 말이다.” 깜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인종차별 의식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통찰이다. 그럼에도 ‘니거’라는 표현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고, 흑인들의 상처와 예민한 반응이 일상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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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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