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택시

여적 2015. 6. 21. 21:00

‘택시(taxi)’의 어원은 라틴어 타카(taxa)에서 비롯된다. ‘평가하다’ ‘부담을 지다’ ‘요금’ 등의 뜻을 지닌 말이다. 세금(tax)과 어원이 같다. 1896년 미국에서 택시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택시 교통의 화두는 요금 문제였다. 합리적으로 요금을 계산할 방법이 없으니 운전자가 맘대로 정해놓은 가격대로 이용됐다. 1891년 독일인 빌헬름 브룬이 택시미터기(taxi meter)를 개발하면서 택시 요금 정책의 전환점을 마련했고, 1905년 영국 런던에서 지금처럼 미터기를 단 택시가 처음 선보였다.

한국의 택시 역사는 1919년 일본인 노무라 겐조가 미국의 닷지(Dodge) 두 대를 갖고 세운 경성택시회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다꾸시(택시)’에는 미터기가 없었다. 시간당 대절료는 쌀 한 가마 값인 6원, 서울 도심을 도는 데는 3원을 받았다. 요즘처럼 운행거리만큼 요금을 매기는 영업 방식은 7년 뒤인 1926년 아사히택시회사가 미터기를 도입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미국식 단위로 2마일(3.2km)에 기본요금 2원, 그리고 0.5마일(800m)마다 50전을 받았다. 어지간한 부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황제택시였던 셈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62년 2000여대의 새나라자동차 택시가 도입되며 대중화가 시작된 이래 택시 요금은 단일요금제로 엄격히 제한되어 왔다. ‘시민의 발’이 된 택시의 요금이 물가나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큰 까닭에 정권 차원의 관리·통제를 받았다. 다만 중형택시, 모범택시, 대형택시 등이 도입되면서 등급에 따라 ‘제한적’ 가격 차등화가 이루어졌다.

고급택시 (출처 : 경향DB)


면허택시제도 도입 100여년 만에 택시 요금의 성역을 무너뜨리는 신종 택시가 등장한다는 소식이다. 국토교통부가 8월부터 시범운영하기로 한 ‘고급택시’는 기존 택시의 개념을 깡그리 무너뜨린다. 차량 외부에 택시 표식도 없고, 미터기·카드결제기 장착 의무도 없어 겉은 일반 승용차와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택시 요금을 자율로 정해 신고만 하면 된다. 이제 비행기처럼 택시도 이코노미,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로 완벽한 계급화가 이뤄지는 셈이다. 쌀 한 가마 값을 내고 타던 황제택시의 부활, 그냥 부자들의 호사가 하나 늘었다고 치면 되는 것일까.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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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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