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의 무게

여적 2015. 5. 13. 21:00

느닷없이 어제 한때 네이버 검색어 1위에 ‘읍참마속(泣斬馬謖)’이 올랐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공갈’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정청래 최고위원에게 “자숙을 권고했다”면서 “읍참마속의 심정”을 토로한 게 계기였다. 문 대표로서는 어렵고 절박한 결정이었음을 내보이고자 인용했을 것이나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읍참마속의 고사성어가 함의하는 리더십의 본령은 법과 기강을 세우기 위해 소아(小我)를 끊어내는 결단이다. 촉나라의 제갈량은 군령을 어기고 얕은꾀로 전투를 벌이다 참담한 패배를 불러온 장수 마속을 주변의 선처 호소에도 불구하고 참수한다. 마속은 제갈량이 총애하는 우수한 장수였다. “천하를 평정하려는 때에 마속 같은 유능한 인재를 없애는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 제갈량의 답은 이랬다. “이같이 어지러운 세상에 전쟁을 시작한 처음부터 군율을 무시하게 되면 어떻게 적을 평정할 수 있겠는가.” 실제 제갈량의 읍참마속은 엄정한 군율이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각인시키면서 전쟁에서의 패배를 오히려 전기로 바꾸었다. 대의와 원칙을 앞세운 제갈량의 정대함과 결단이 촉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것이다.

새정치연합 최고위원들이 보여준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저열한 언행”은 4·29 재·보선 참패로 허우적대는 당에 KO펀치를 안긴 꼴이 됐다. ‘싸가지 없고 질서 없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며 당의 지지율 추락에 불을 댕겼다. 전투(선거)에서 패배하고 내분까지 불거진 비상한 상황에서 문 대표가 꺼낸 읍참마속은 아무런 울림도, 실제 효력도 내지 못하고 있다. 문 대표의 호소가 제갈량의 ‘읍(泣)’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정청래 최고위원에 대한 ‘자숙 권고와 최고위원회의 출석 정지’ 조치가 시늉만의 ‘참(斬)’으로 비치기 때문일 터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출처 : 경향DB)


제갈량은 마속을 읍참한 뒤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3단계 강등하며 병사들에게 사과했다. 그래서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궁지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등장하는 읍참마속류와는 무게를 달리한다. 문 대표의 읍참마속이 참으로 공허한 것은, 제갈량이 보여준 리더로서 스스로에게 향하는 뼈아픈 성찰과 자책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수효과 사망선고  (1) 2015.06.16
한강 노들섬  (0) 2015.06.14
읍참마속의 무게  (0) 2015.05.13
공포 마케팅  (0) 2015.05.11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0) 2015.05.04
식사 경매  (0) 2015.04.26

Posted by 양권모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