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마케팅

여적 2015. 5. 11. 21:00

미국의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경쟁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는 ‘공포’라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난뱅이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지금 돈을 많이 벌어놓지 않으면 노후가 비참할 것이란 두려움, 저축을 해놓지 않으면 언젠가 아플 때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 등등. 이런 공포야말로 경쟁사회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공포 마케팅’은 이러한 공포와 두려움을 판매에 이용하는 기법이다. 목적적으로 위험을 자극하고 불안감을 조성해 판매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공포 마케팅이 특히 보험 영역과 의약품, 사교육 시장 등에서 맹위를 떨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후에 대비하지 않으면 비참한 미래를 맞을 것이란 공포 조성이 ‘은퇴 보험상품’을 구매케 한다. 언제 병이 나서 쓰러지고 더 악화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용 말고 오용 말자’는 구호를 무색하게 의약품 판매를 이끈다.

토마스 프랭크는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에서 공공의 정치를 사적인 비즈니스로 만든 미국 우파가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 ‘공포’와 ‘분노’라고 분석한다. 1980년대 미국 뉴라이트 단체들은 정치자금을 모집하려 집집에 발송한 편지에서 “악당 같은 진보 인사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미국식 생활방식을 파괴하려 한다”고 선동했다. 미국 우파의 공포 마케팅은 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라 대상이 ‘반공’에서 ‘시장’으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집권 전략의 근간을 이룬다.

득대체율 50%인상 시 국민연금 고갈 시점별 보험료율 추정치 (출처 : 경향DB)


청와대와 정부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논의를 차단하려 연일 ‘공포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엉터리 추계를 토대로 ‘보험료 2배 증가’를 주장하고 ‘세대 간 도적질’이란 극한 표현까지 동원하더니, ‘세금폭탄 1702조원’이라는 어마한 공포 폭탄을 터트렸다. 미래세대의 공포를 격발하기 위해 개념을 왜곡하고 수치를 호도해 가며 ‘1702조원 세금폭탄’을 만들어 냈다. 공포 마케팅을 주업으로 하는 보험업자나 의료업자들조차 감탄(?)해 마지 않을 신공이다. 문제는 청와대 스스로 국정과 통치를 보험업 수준의 비즈니스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점일 터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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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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