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분 관계

여적 2015. 4. 20. 21:00

안면(顔面)은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즉 얼굴·낯을 뜻하는 한자어다. 일면식(一面識), 반면식(半面識) 등의 표현에서 보듯 ‘얼굴을 안다’는 것은 사람 사이 관계를 가름하는 주요한 척도였다. 그렇기에 ‘안면’은 우리말에 정착하면서 얼굴·낯이라는 뜻 말고도 ‘서로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이라는 의미로 의미확장이 이루어졌다. ‘안면을 바꾸다’거나 ‘안면을 몰수하다’, 안면박대·안면치레·안면부지 등에서 ‘안면’이 그런 뜻이다.

관계의 그물망이 사방팔방으로 짜여지고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인 안면은 특별한 친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면 한번도 없이 ‘친분 맺기’가 단숨에, 폭넓게 이뤄지고 끈끈하게 이어지는 판이다. 이제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알고 통하는 사이로 엮인 ‘좁은 세상’이다. 실제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3.6 단계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당발’ 교류와는 거리가 먼 필부필부도 무턱대고 특정 상대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안면박대를 했다가는 우세 사기 십상인 세상이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업무를 마친 뒤 퇴근하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_ 연합뉴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직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를 속된 말로 ‘생깐’(안면 바꾼) 것이 그에게 올가미가 되고 있다. 이 총리는 당초 “전혀 친하지 않다” “만난 적도 별로 없다” “친분도 없다”는 등 극구 ‘안면 사이’를 강조했다. 금품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이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는, 비위 연루 정치인들의 단골 방어수법을 으레 동원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속속 제시되는 증거·정황은 이 총리의 ‘망자(亡者)’에 대한 안면몰수가 새빨간 거짓임을 가리킨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이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23차례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검찰 수사에서 최근 1년 동안 217번에 걸쳐 전화를 주고받은 게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만나고 십수 차례씩 전화를 거는 사이가 ‘별 친분이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관계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 한다. 부부처럼 밀접한 관계”(노회찬 전 의원)보다 나은 현답을 찾기 어렵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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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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