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의 무대인 동광리 삼밭구석 마을터 인근에 ‘헛묘’가 자리하고 있다.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을 피해 한라산 볼레오름으로 도망치다 붙잡혀 총살당한 뒤 정방폭포 절벽 아래로 버려져 주검을 찾을 수 없었던 마을사람들의 빈무덤이다.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2003년)는 4·3사건의 인명피해를 2만5000~3만명으로 추정했다. 진상조사위에 신고된 희생자수가 1만4000여명이었으니, 반세기 넘도록 해원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당시 제주도민의 10%가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학살된 비극적 사건은 반세기 넘게 국가에 의해 누명이 씌워졌다. 이승만 정권 이래 김영삼 정부 때까지 4·3은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 ‘좌익세력의 반란’으로 덧칠되었다. 희생자는 좌익 동조자로 두 번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은 제주 사람들은 ‘통곡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광란의 시대를 헤쳐나온 유족과 ‘산 자’들의 땀과 눈물 끝에 2000년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4·3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주민 학살’로 재조명되었고, 2003년 10월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제주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67주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왼쪽에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보인다. _ 연합뉴스


4·3의 역사는 지난해 ‘4·3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어둠의 터널을 온전히 벗어날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추념식에 불참, 국가추념일 지정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갈등과 분열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상생과 화해’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을 기대했으나 외면당했다. 박 대통령의 불참이 4·3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극우보수단체들의 움직임과 닿아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인가.

그래서 어제 67주기 추념식에서 불리려다 돌연 제외된 4·3의 진혼곡 ‘잠들지 않는 남도’의 울림이 더욱 처연하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양권모 논설위원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사 경매  (0) 2015.04.26
친분 관계  (0) 2015.04.20
대통령의 ‘4·3 추념식’ 불참  (0) 2015.04.03
가난 증명서  (0) 2015.03.25
춘서(春序)  (0) 2015.03.22
오세훈법, 성매매법, 김영란법  (0) 2015.03.08

Posted by 양권모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