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와 빌딩숲

여적 2015. 1. 19. 21:00

서울 한복판의 용산 미군 기지는 무려 120여년 동안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은 이역(異域)이었다. 1882년 청나라 군대가 임오군란을 진압한 뒤 주둔하면서 용산의 흑역사가 시작된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청나라 주둔지에 그대로 눌러앉았고, 러일전쟁을 앞둔 1904년 수만명의 일본군이 주둔할 대병영을 지었다. 이게 현재 용산기지의 원형이다. 일제시대 용산기지는 조선주둔일본군 사령부가 자리 잡아 대륙 침략의 후방기지 역할을 수행한다. 해방 후 용산기지는 주둔 군대의 나라만 바뀌었다. 1945년 남한에 진주한 미24군단 사령부가 텅 빈 용산기지를 차지했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 미8군이 영구 주둔하면서 이후 용산기지는 ‘서울의 아메리카’로 철옹성을 구축했다.

용산기지는 외국군대가 상시 주둔함에 따라 압축성장 시대 ‘개발의 시간’이 멈춰선 공간이다. 서울이 확대를 거듭하면서 용산이 중심부로 위치하게 돼 가치는 치솟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군이 주둔한 성역으로 보호받은 까닭이다. 동작대교의 강북 연결도로가 끊기고, 지하철 4호선이 직진하지 못하고 우회 노선으로 건설된 것도 용산기지 때문이다.

개발이 비켜갔기에 용산기지 땅은 서울의 마지막 ‘허파’ 지대로 남았다.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이 확정됨에 따라 2006년 정부는 용산기지 공원화 계획을 선포한다. 당초 계획대로면 2012년까지 미군 기지를 이전하고, 본격 공사를 벌여 2015년 1월 1단계로 조성된 공원을 개장했어야 한다. 그리고 2, 3단계 작업을 거쳐 해방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 ‘용산민족공원’을 완전 개장한다는 청사진이다.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용산참사 현장에서 열린 6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미망인들이 고인을 생각하며 국화꽃과 '이안에 사람있다'란 손글씨를 현장의 벽에 붙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전시작전권 전환이 연거푸 연기되고 급기야 한미연합사령부가 용산기지에 잔류키로 결정되면서 ‘용산민족공원’이 불구의 위기에 처했다. 연합사는 공원 부지의 허리를 끊는 위치에 있다. 설상가상, 정부는 용산공원에 초고층 빌딩을 대거 건설하는 개발계획을 내놓았다. 그것도 투자활성화 대책의 일환이다.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건축가 승효상)은 저만치 밀려나고, 자꾸만 ‘용산공원’이 아닌 ‘용산개발’이 되고 있는 꼴이다. 용산을 지배한 ‘외국 군대’ 대신 ‘탐욕의 자본’이 주둔하는 공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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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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