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특보

여적 2015. 1. 13. 21:00

7대 대선을 앞둔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각계 전문가들로 하여금 중·장기 정책 수립에 이론적인 뒷받침을 하고 정부 시책에 대한 분석·평가를 맡을 연구소 형식의 외곽기관 설립을 구상한다. 하지만 ‘연구소원’이라는 직함이 각계의 중량급 인사 영입에 걸림돌이 된다.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 ‘대통령 특별보좌관제’다. 미국 백악관의 특별보좌관(special assistant)에서 따온 이름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 특보’는 단순 조언자에 머물지 않았다. 실질적인 정책 수립의 브레인으로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못잖은 막강한 역할을 수행했다. 김용환·남덕우(경제), 함병춘·윤치영·이용희(정치), 김용식·최규하(외교), 박종홍(문화교육) 등 내로라하는 역대 특보들의 면면이 징표다.

‘대통령 특별보좌관’이라는 직함은 대통령이 부여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도 활용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 노태우 정무2장관이 외교안보 특보를 겸하면서 올림픽 유치 활동을 벌였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임동원 외교안보통일 특보가 남북 접촉의 밀사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후 정부에서 대통령 특보단은 대개 측근들의 ‘일자리 창출용’이거나 기존 청와대 및 내각 멤버의 퇴임 후 거처로 활용되면서 빛이 바랬다. 이명박 정부 후반 이동관·박형준·유인촌 등 최측근들로 특보단이 꾸려지면서 ‘특보정치’ 논란까지 빚은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특보는 업무를 위한 실비만 제공되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강철 정무특보가 청와대 인근에 횟집을 내 시비가 일었을 때다. 실제 횟집을 운영하는 부인이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항변해 ‘무보수’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이회창 특보단` 출신 박근혜 정부 주요 인사 (출처 : 경향DB)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소통’을 위한 특보단 신설 방침을 밝혔다. 이제라도 ‘소통 부재’를 깨우친 것이라면 가상한 일이겠으나, 특보 몇 자리 늘린다고 고질의 불통이 개선될지 의문이다. 장관이나 수석비서관 등 계선조직의 인사조차 대통령과의 소통이 어려운 구조에서 특보가 ‘문고리 권력’을 넘어 바깥의 얘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싶다. ‘특보단 신설’이 청와대 쇄신 요구를 우회하고, 충성심으로 무장한 측근 몇몇을 ‘대통령 곁’에 두기 위한 기획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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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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