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

여적 2014. 12. 31. 21:00

너나없이, 다시, 한 살이 보태졌다. 실로 “먹는 나이는 거절할 수 없고, 흐르는 시간은 멈출 수 없다”(장자). 더해진 한 살은 공평하지만, 나이 먹음의 하중은 만인만색이다. 필시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보다 새날에의 설렘이 크면 젊음이고, 반대이면 나이듦의 표식이겠다. 세월을 역류하려는 열망은 나이들수록 강렬해진다. 언젠가 한 출판사가 <중년의 발견>을 번역 출간하면서 <나이를 속이는 나이>로 책제를 삼았다. 중년은 ‘나이를 속이는 나이’라는 진술, 못내 주억이게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영혼은 늙게 태어나 젊게 성장한다. 그것이 인생의 희극이다. 육체는 젊게 태어나 늙게 성장한다. 그것이 인생의 비극이다”라고 했다. 영혼을 주름지지 않게 함으로써 녹슨 육체를 넘을 수 있을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나이듦의 미덕>에서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고 술회한다. 꿈이 후회를 덮으면 나이는 들지언정 늙지 않는다는 깨침이다. 해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산을 내려가는 것”이고 “꿈과 멀어지는 것을 느끼는 잔인한 과정”이라는 비감은 어쩔 수 없다.


세계적 장수마을로 꼽히는 터키 악세히르에선 가장 오래 산 사람의 수명이 20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중년에 든 ‘노동해방 시인’이 그 마을에서 홀연한 깨달음을 얻는다. 새해, 나이 먹음에 번다해진 마음을 내리치는 죽비소리다.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 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박노해 ‘삶의 나이’)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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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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