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정치

여적 2013. 12. 11. 21:00

테러리즘(terrorism)의 어원은 프랑스혁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혁명 말기 권력을 장악한 로베스피에르 등 자코뱅당은 정권 유지의 동력을 대중의 ‘공포’(terreur)에서 찾았다. 정적이나 반대 세력을 말살하는 것으로 공포심을 일으켜 대중의 무조건적 복종을 끌어냈다. 로베스피에르의 집권 1년(1793년 9월~1794년 7월) 동안 30만명이 체포되고 1만5000명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이 테러에 의한 독재를 ‘공포정치’(La Terreur)라고 한다. ‘공포정치’는 근대에 들어서 스탈린주의나 파시즘, 제3세계 독재정권에서 유용한 통치수단으로 계승됐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2인자로 꼽힌 장성택이 숙청된 과정은 공포정치의 극단을 보여줬다. 숙청이 결정된 정치국 확대회의 현장에서 장성택이 인민보안요원에게 끌려나가는 사진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공개 체포라는 충격요법이 노린 것은 북한의 권력 엘리트와 인민들에게 공포의 확산과 심화일 터이다. 가공할 공포를 불러일으켜 내부를 통제하는 공포정치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끌려가는北장성택(출처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북한은 현재 김정은의 권력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면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이 발화한 ‘공포정치’는 엉뚱한(?) 데로 울림을 낳았다. 같은 날 새누리당은 민주당 양승조·장하나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코레일은 ‘민영화 반대’를 내세우며 파업에 들어간 철도노조원 6000여명을 직위해제했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하고 YH 노동자 농성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1979년의 공포정치가 데자뷰되면서 ‘박근혜 공포정치’가 부각된 것이다. 기실 ‘최고 존엄’의 반대 세력에 대한 종북몰이, 체제의 안위를 앞세운 공안기조는 교묘히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란 점에서 공포정치의 변종이라 할 수 있겠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맡았던 이준석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원용하면, 공포정치의 행태가 “북한만의 이야기인지 미지수”이다.


대중의 공포에 의지한 통치는 한계가 있다. 정권이 어려워질수록 보다 강력하고 자극적인 공포에 기대게 되고, 결국 압축된 공포감은 생존을 위해 폭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가리킨다. 1년 만에 비극적 종말을 맞은 ‘공포정치’의 원조 로베스피에르가 그랬고, 유신 공포정치의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랬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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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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