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할 만도 했다. 극적인 구성에다가 손님들이 하나같이 맛이 예술이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 절로 배가 고플 만했다. 게다가 그게 공영방송에서 교양과 정보의 프로그램이라는 간판을 달고 객관을 내세운 터에 정말로 맛있어 보일 만했다. 
 
같은 값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받은 이들은 기꺼이 얇은 지갑이지만 열 준비를 할 만했다. 방송에 소개되지 못한 훨씬 많은 식당의 주인들은 애면글면 ‘솜씨’를 탓할 만했다.

소위 “방송에 나왔다”는 게 이것에서만큼 실제로 간주되고, 선전되는 곳도 없다. 방방곡곡의 어지간한 곳이면 무슨무슨 방송에 나온 집, 하나도 모자라 서너 개 프로그램을 나열한 간판들이 깔렸다. 방송이 만들어낸 맛집 공화국, 그냥 허튼 소리만은 아니었다. 하기야 1년에 지상파에 소개된 맛집이 1만개를 헤아린다니 그럴 것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 맛집들 ‘전부’가 방송에서 손님들마다 하나같이 외친 대로 맛이 예술일까.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는, 다큐영화 <트루맛쇼>는 그 궁금을 통렬히 풀어준다. 방송사 PD 출신 감독이 직접 식당을 차린 다음 브로커와 홍보대행사에 돈을 건넸더니 지상파의 내로라하는 맛집프로그램들에 식당이 소개됐다. <트루맛쇼>가 전달하는 그 적나라한 전말은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완전 블랙코미디다.

음식방송은 잘 짜여진 ‘맛집 쇼’

메뉴는 방송사 프로그램에 맞춰 급조되고, 손님은 동원된 가짜이고, 그 손님의 표정과 대사조차 맛있게 연출됐다. 방송이 주문한 매운 맛에 맞추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매운 음식을 개발했다”는 증언에, 대통령 당선자의 단골집이라고 소개된 맛집이 다른 고발프로그램에서는 가짜 한우로 설렁탕을 끓이는 집이 됐다. 그런데도 식당이 방송에 나간 다음에 전화가 쏟아지고, 한때는 매상이 두세 배 오른다. 역시 TV맛집은 위력이 있었다.

결국 여느 식당도 돈만 들이면 그 TV맛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 의해 연출되면 형편없는 맛도 예술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루맛쇼>의 갈파대로 음식방송은 잘 짜여진 쇼였다. 예서 방송의 저널리즘 잣대를 대는 것은 턱없다.

결국 교양과 정보로 치장한 방송의 맛집쇼에 속고, 괜히 입맛을 다시고, 얇은 지갑을 연 꼴이다. 치밀한 각본에 따라 포장된 맛에 속절없이 길들이고 유혹당한 것이다. 방송사와 제작사에 돈을 안겨주는 맛집 코너가 방송의 교양정보 프로그램을 지배하면서 진짜 교양은 밀쳐지고 도태시키는 판이었으니 단순히 특정의 속임방송 차원의 문제로만 그치지도 않는다.

<트루맛쇼>가 고발한 맛집 프로그램의 실상은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것들이 얼마나 왜곡되고 조작된 현실일 수 있는지를 일깨운다. 방송이 만든 맛집 공화국이 된 것은 방송이 조작하고 연출한 것에 스스로를 무장해제하고, 유혹당하고, 장단을 맞춘 결과이기도 하다. 의심하지도 않고, 확인하려 하지도 않고, “방송에 나왔다”는 것만으로 사실로 간주하고 믿었기 때문이다.

<트루맛쇼>는 방송이 만든 세상과 이미지가 어떻게 조작되고, 연출되고, 종국에 기만일 수 있는지를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는 방송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길들여지고 마비될 수 있는지를 환기시킨다.

‘자본방송’의 왜곡 벌써부터 우려

이제 몇 달 후면 자본에 더욱 종속될 거대 상업방송들이 줄줄이 생긴다. 자본에 일방으로 포획된 방송이 세상을, 정치를, 이미지를 어떻게 왜곡하고 분칠할 수 있는지를 새기고 경계할 수 있다면, 지금껏 방송에 나온 일부 엉터리 맛집에서 털린 주머니가 헛된 것만은 아닐 터이다.

태어나서부터 30년 동안 살아온 세상이 생방송을 위한 거대한 TV프로그램 세트이고, 이웃은 물론 동료 심지어 아내와 아버지까지 모두 맡은 배역을 수행하는 연기자라는 것을 깨달은 트루먼은 선택했다. 길들여진 안락한 삶의 무대를 버리고, <트루먼쇼> 권력자들의 회유와 위협을 딛고 조작된 세트에서 진실과 현실로 나가는 문을 당당하게 연다. 갈수록 자본의 지배력이 커질 방송권력에 대한 감시와 자각이 필요하다.

어디쯤이던가. 그 숱한 방송 소개 맛집 간판들 사이에서 ‘TV에 한번도 안 나온 집’이라고 내건 집부터 먼저 가봐야겠다.

Posted by 양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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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sh 2012.02.16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루맛쇼 정말로 충격과 경악이었어요 글 잘읽고 갑니다